2011-08-22

[검은땅 사할린에 무지개를 피우다] #6. 봉사 6일차 - 집담회





2006년 8월 8일

러시아 사할린 해외봉사 6일차






지난 날에 RCY 친구들이 견학을 하였다면,

오늘은 정말로 열심히 봉사활동을 하였습니다.




오늘 이 친구들이 간 곳은 바로

사할린 한인 선교사님이 직접 운영하시는 농장입니다.

소망교회 선교사님께서 승리농장이라는 곳을 경영하시는데

이곳에서 자라나는 수확물은 수익을 위해 재배하는 것이 아닌,

바로 불우이웃을 도우기 위해 쓰인다고 합니다.




자, 우리 RCY 친구들, 여기서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요??

잡초뽑기??

네~ 맞아요^^

여기 승리농장은 엄청나게 넓은 곳이기 때문에

그만큼 잡초도 엄청나게 많이 자라고 있죠.

그래서 우리가 해야 할 첫번째 작업이죠~ㅋㅋ


이 친구는 지난번에 소개하려고 했던 러시아의 두 훈남 중 하나인

다니엘이라는 친구 입니다.

근데 이 친구는 봉사활동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고 해서

이날 우리들과 함께 봉사활동을 체험하러 왔다고 합니다.

러시아에서는 아직 봉사활동의 개념이 잡혀있지 않답니다.

이번에 RCY의 활동으로 러시아에도 봉사라는 개념이 잡혔으면 하네요^^



우리들의 점심입니다.

코펠에 라면을 끓여서 먹었는데

요리는 잘 안되었지만, 이 날 먹은 라면은

태어나서 먹은 라면 중 가장 맛있는 라면이었습니다.


오전에 잡초뽑기 활동을 끝마치고

오후에는 말의 먹이를 준비하는 건초작업을 하였습니다.




여기 승리농장은 그 넓이가 엄청나죠??

여기서 자라나는 풀을 잘 말린다면 말이나 소들이 먹는 식량으로

제격이겠죠?



오후에 우리가 한 건초작업은

한번 말린 건초를 뒤집어 반대쪽도 말리는 일입니다.

이 작업이 중요한 이유는 사할린은 겨울이 길기 때문에

이렇게 건초를 말릴 수 있는 시간이 짧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손이 많이 부족하죠^^


말과 인사를 나누는 형기와 남구ㅋㅋ

말도 이런 형기와 남구가 싫지 않은가 봅니다.




그리고 저녁에는

6일차 일정중 가장 중요한...


한인 1,2세대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하는

집담회가 있었습니다.

집담회라는 시간을 통해

할머니 할아버지들께서 그동안 겪었던 과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우정구 할아버지의 이야기

이 할아버지께서는 1934년에 태어나셔서 9세 때 사할린으로 이주하셨습니다.

 한국기억은 샘과 까꾸리에 대한 기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8세 때 학교에 보내면 너무 이른 것 같아 9세 때 학교에 갔더니

너무 늦게 왔다고 하여 입학이 안돼서 탄광에 모집으로 가셨다고 합니다.

한국이 그리울 때 12시 넘어서 이불속에 들어가서

라디오로 가곡도 듣고 소식도 듣곤 했다고 하네요.

1세대 할머니 할아버지 분들은 한국을 조국이라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아직도 한국의 일을 들으면 마치 자신의 일처럼 느껴진다고 합니다.

얼마전 수해에 대한 소식을 들었을 때 자기 일처럼 걱정이 되었다고 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들에게 해주신 한 마디는

" 사할린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다같이 한국에 가서 살 수 있도록 사회여론에 올려줘.

그리고 너희들은 열심히 일하고 공부해서 한국경제를 일으키고, 번영하게 해줘."
였습니다. 꼭 새겨듣도록 하겠습니다.




정채령 할머니 이야기

이 할머니는 의성에서 농군의 자식으로 태어났습니다.

언니는 16세에 경주로 시집을 갔고, 할머니는 5세에 경주로 이주하셨다가

1939년 사할린에 가셨습니다. 사할린에서 학교에 갔더니

일본이름으로 바꿔서 아예 다른 사람으로 살게 되어버렸다고 합니다.

오빠가 사할린에 있는 탄광에서 일하면서 가족들을 먹여살렸다고 하네요.

전쟁 당시 한국과 연락이 끊겼다가 49년 경주에 사는 언니에게 편지가 왔으나

다시 끊겼습니다. 45년 오빠가 브이코 탄광에서 일하던 중

대한민국은 일제감정기로 부터 해방되었구요.

남편되시는 분은 스무살에 군대에 가서 브이코 탄광에서 훈련을 받았다고 합니다.

 배가 너무 고파서 고생을 정말 많이 했다고 합니다.

해방 후에 다시 한국에 못가게 되었는데,

두 번 모국방문 후 영주귀국을 원하시다 돌아가셨습니다.

모국방문 시에 언니를 53년 만에 만났는데 서로 못 알아본 채 울다가

옛날 이야기를 하면서 진짜 자매라는 것을 확인했다고 합니다.

언니는 아직도 경주에 살아계신답니다.


고복순 할머니 이야기

이 할머니께서 14세 때 대한민국은 일본으로 부터 해방이 되었다고 합니다.

일제시대에 일본학교를 다니면서 일본어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한국어는 해방 후에 배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본어, 한국어, 러시아어를 할 줄 알지만 완벽하지 않아서

삼국 언어를 섞어서 사용하는 사할린 특유의 언어로 대화한다고 합니다.

자식들과 서로 의견이 안 맞을 때, 자식들은 러시아어로 말하고,

나는 한국말, 일본말로 욕하려니까 서로 무슨말 하는지 모르겠어서

때때로 답답함을 느낀다고 합니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옛 이야기를 듣고

눈물을 흘리지 않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모두 펑펑 울어서 결국 집담회는 잠시 중단되었는데요~


예전에 대창양로원에서 들었던 사할린 이야기도

눈물 없이는 절대 들을 수 없었던 이야기들이었는데

지금 이자리에서 들은 이야기는 그것보다 더 슬펐습니다.




우리 RCY 친구들은 이 이야기를 듣고 엄청난 책임감이 생겼습니다.

지금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겪으신 고생을

우리 후손들에게는 절대 겪지 않게 해야겠다는 사명감을 갖게 되었습니다.


절대 잊을 수 없는 하루가 될 것 같네요.






- DUNGBUL Team, KOREAN RCY's PR T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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